인생의 오후 5시와 가을-도종환의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도종환씨의 10번째 시집 표지. 창비 제공(이하 동일)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서)


    『접시꽃 당신』의 시인 도종환(57)씨가 5년 만에 펴낸 열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펴냄)에서 자신의 인생 시간을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오후 5시는 ‘질풍노도’의 낮 12시와 오후 1시 사이를 온전히 기억하면서도, 아직 시간이 있음을 감사할 수도 있고 찬란한 황혼을 생각할 수도 있는 성찰의 시간쯤 되겠지요.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중)



   1980년 광주항쟁을 계기로 교육운동과 민족문학운동을 펼쳐온 도종환씨는 이번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서도 우리 사회의 모순과 현대 문명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카이스트>에선 젖은 꽃잎 비에 다시 젖으며/ 수직으로 떨어져내렸다“며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하게 만드는 현실을 비판하고, <사막>에서는 서로가 가시가 되는 세태와 문명을 꼬집습니다.


마른 바람이 모래언덕을 끌고 대륙을 건너는

타클라마칸 그곳만 사막이 아니다

황무지가 끝없이 이어지는 시대도 사막이다

저마다 마음을 두껍고 둔탁하게 바꾸고

여리고 어린 잎들도 마침내 가시가 되어

견디는 일 말고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곳

그곳이 사막이다

우리 안에도 선인장 가시 같은 것이 자라나

여차하면 남을 찌르고 내게 날카로워지는데

뜨거움은 있으나 서늘한 숨결은 없지 않는가

오직 전속력으로 그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곳

연민도 눈물도 없이 사는 이곳이 사막 아닌가

눈 줄 데는 없는 황량한 메마른 풍경 속에서

모두 다 카우보이가 되어버린(<사막> 전문)


   하지만 이번 시집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자신의 여러 인생 굴곡을 찬찬히 반추하는 부문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그는 1980년 광주항쟁 당시 군인 신분으로 언덕에서 M16소총 가늠자를 들여다보며 광주시민군이 다가오기를 기다린 경험 이후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왔습니다. ‘분단시대’ 동인 결성과 민족문학운동, 아내의 죽음, 해직과 구속과 복직 등. 또 심신피로로 쓰러진 뒤 교직을 그만두고 속리산에서 칩거하기도 했지요. 그야말로 온갖 시대와 세월의 풍상을 겪어서 이 자리에 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남아있다는 점에서 인생의 계절로 본다면 가을 오후쯤 될 터.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가을 오후> 전문)


   그래서 이번 시집은 은은합니다. 세상에서, 우주에서, 인생에서, 삶에서, 그리고 시에서조차 은은합니다. 질풍노도의 분노를 우뚝 넘어서고, 죽음 앞에 이른 절망 또한 아직 이른 풍경.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아련한 향기가 스미어 있다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살구꽃 위에 내린

맑고 환한 빛이 들어 있다

강물도 저녁햇살을 안고 천천히 내려갈 땐

은은하게 몸을 움직인다

달빛도 벌레를 채워주는 나뭇잎 위를 건너갈 땐

은은한 걸음으로 간다

은은한 것들 아래서는 짐승도 순한 얼굴로 돌아온다

봄에 피는 꽃 중에는 은은한 꽃들이 많다

은은함이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꽃길을 따라

우리의 남은 생도 그런 빛깔로 흘러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 잡고 은은하게 물들어갈 수 있다면(<은은함에 대하여> 전문)


   물론 인생의 오후 5시쯤, 가을 오후라고 해서 과거가 완전히 부정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니까요. 마치 비에 젖어도 향기를 뿜는 라일락꽃처럼. 그렇다고 미래가 벌써 현실을 대치하지도 않아야겠지요.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도종환씨는 인생의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가을 오후쯤에 서서 예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자연이 펼쳐집니다. 정오의 강렬한 태양도 아니요, 여름 거센 태풍이 아닌. 큰 바람이 지나갔지만, 이제는 자잘한 바람에 흔들리는 ‘풍치의 나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이를 빼고 치과를 나서니 스산한 바람이 분다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걸 그동안 몰랐다

아니 통증을 전하는 방식으로 여러 차례

알려왔으나 애써 무시하며 지냈다

이런 일 여러번 겪오본 아내는

바람이 사소하게 불어도 흔들릴 풍치의 나날과

둘 다 연금도 퇴직금도 없이 견뎌야 할 불안한

노후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허전해지는 삶의 한 모서리 사리물고

초가을에서 깊은 가을로 돌아오는 길

웅송그리며 서 있는 과꽃 몇송이가 보인가

이파리 몇 개는 벌레 먹고 군데군데 구멍이 났는데도

자줏빛 꽃 곱게 피우고 있는 게 예쁘다(<발치(拔齒)> 전문)


    그는 인생의 오후 5시쯤 가을 오후쯤 되면 스스로 처음이, 성채가, 신이 되겠다는 치기를 넘어, 나무 하나로 숲의 일부가 되는 것이 기쁨임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고 노래하는 듯합니다. 다음의 시가 서늘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발자국

아, 저 발자국

저렇게 푹푹 파이는 발자국을 남기며

나를 지나간 사람이 있었지(<발자국> 전문)

  

    도종환씨는 2008~2009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아 집필실인 충북 보은의 구구산방과 서울을 오가기도 했습니다. 아마 때로는 막차를 잡아타고 가면서 총총한 별 하나 되기를 꿈꾸기도 했을 것입니다. 괜찮다고, 네 편이라고 이마 씻어주는.


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

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맴돈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내가 별을 떠날 때도 있어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별 하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별 하나> 전문)


   오늘도 바람이 휘감은 꽃, 비에 젖은 한송이 꽃을 보면서 찬란한 황혼, 총총히 빛나는 별을 꿈꾸는 도종환씨의 겨울이 벌써 궁금합니다. 그때 하늘의 별은, 땅위의 꽃은 누구의 별이고 꽃입니까.



<참고문헌>

도종환(2011).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파주: 창비.

Posted by 김용출(KIM, YONG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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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인정머리가 없다?(뉴스가치 편)

-공선옥의 『꽃피는 시절』


(사진=창비 제공)


   대신 형미한테 부탁하면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원회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질 계기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전화를 했다. 명색이 그래도 시사잡지 기자가 아닌가. 사연을 이야기했더니, 형미 왈,

   “언니, 그게 그러니까 말야, 무엇을 반대한다고 하는 싸움이 유정면에만 있는 게 아냐. 전국이 다 그래, 다. 내 말은 그러니까, 유정면 주민들의 투쟁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란 거지.”

   “그래, 그렇다고 쳐. 그러면, 특별하지 않으면 기사로 쓸 가치도 세상에 알릴 이유도 없다는 거야, 뭐야?”

    “요는, 그러니까, 그런 시시콜콜한 동네 이야기까지 기삿거리로 다루기엔 대한민국이 그리 한가한 나라가 아니란 말이지. 물불 안가리잖아? 불만해도 봐봐. 남대문에서, 이천에서, 광화문에서, 용산에서. 물은 또 어디야? 당장에 사대강이 있네. 언니, 근데, 사대강 중에 섬진강도 들어가나?”(공선옥, 2011, 91쪽)


   시골마을 유정면에 들어선 쇄석공장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투쟁’을 그린 공선옥씨의 장편소설 『꽃 같은 시절』의 한 대목입니다. 공선옥의 소설은 지난해 계간 『창작과 비평』에 연재한 작품을 묶은 것인데요,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횟집을 하다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영희 부부는 살 집을 찾아 시골마을에 흘러들지만, 마을 인근에 불법 쇄석공장이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할머니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집니다. 외지인 영희는 떼밀리다시피 시위 현장에서 가고 할머니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점차 ‘투사’로 변해갑니다.

   제시된 대목은 영희의 부탁을 받은 작가 서해정이 친구로 알고 지내는 시사잡지 기자 형미에게 유정면 투쟁 소식을 기사화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기자 형미는 뉴스 게재에 난색을 표시하면서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널리즘과 현실적인 접근


   형미가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에 대해 ‘특별하지 않는 이야기’라거나, 나중에 언급되지만, ‘시끄러운 순서에서 밀린다’고 지적한 것은 다소 예매한 말이지만, 저널리즘이나 학술적으로 풀어서 설명한다면 중요성이 떨어지는 이야기 또는 흥미롭지 않는 이야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즉 형미의 견해는 기본적으로 저널리즘, 신문학 등에서 뉴스를 보도할 때 작용하는 뉴스 가치(news values) 기본 개념에 매우 부합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크리스 맥두걸(Macdogall, C.)은 뉴스 가치로 적시성(timeliness), 근접성(proximity), 저명성(prominence), 영향성(consequence), 흥미성(human interest) 등을 제시했고, 존 갈퉁(Galtung, J.)은 어떤 사건사고, 현상 등이 뉴스로 보도되는 이유에 대해 빈도, 진폭, 명확성, 친밀성, 일치성, 경악성, 계속성, 조화성 등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이준우, 2002). 이에 따라 많은 국내 학자들은 시의성, 근접성, 저명성, 영향성을 중요성으로 묶고, 인간적 흥미에는 갈등, 이상성, 로맨스, 영웅 등의 세부 요소를 제시하기도 합니다(임영호, 2000; 이준우, 2002).

   저널리즘에서 강조되는 이 같은 뉴스 가치는 언론 제작과정에서 주요한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이 기사화되지 않는 소설과 달리,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족이 4.19혁명 51주년인 지난 4월19일 서울 수유리 국립묘지를 찾아 참배하려다 희생자단체 회원들의 저지로 무산된 내용은 모든 언론에서 뉴스로 처리했습니다. 이는 4.19혁명과 이승만 정권간의 역사적 평가와 화해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기사=세계일보 제공)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 소식이 뉴스로 보도되지 못한 것과 관련, 저널리즘 원론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적인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즉 한국에서는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다뤄야 할 기사는 많지만 이에 비해 기자들은 턱없이 적어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기자가 하루에도 서너개 정도의 기사를 처리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입니다. 인력과 시간, 비용 등에서 모든 지역의 사건사고를 커버할 수 없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사건사고의 경우 현실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여건이라는 얘깁니다.



공정한 뉴스란 무엇인가


   저널리즘 원칙과 한국 언론의 현실론적 차원에서 검토해봤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신문과 기사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거나 진실을 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널리즘과 한국 언론의 현실에만 집착하면서 정작 ‘지금 여기’ 우리 이웃들의 땀과 눈물,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 않느냐는 시각도 분명이 존재한다는 얘기죠. 아마 공선옥의 『꽃피는 시절』의 대목도 바로 이 같은 사회적인 또는 역사적인 진실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시끄러운 것도 다아 순서가 있단 말....”

   욱, 하고 치밀어오르는 어떤 기운 때문에 형미 말을 가로챘다.

   “순서? 순서 좋아하지 마라. 여기 지금 애기 낳고 다음날 바로 논밭에 일하러 나가야 했던 할머니들이...할머니들이...”

   이것이 무슨 조홧속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이영희한테서 전염된 게 분명했다. 이영희가 할머니들이라는 말만 발음하면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그 증세가 자기한테 옮겨올 줄이야.(92쪽)


   뉴스 가치 개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뉴스가치 또한 영원불멸하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나라와 사회 등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입니다. 순박한 유정면 할머니들이 길거리에 나오게 된 게 비록 ‘뻔한’ 중요하지 않는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들여다볼 여지는 없는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죠. 더구나  불법 탈법의 가능성이 있거나 가능성이 농후하다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줄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와 증언이 있다면, 파고들어 조명해볼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사회의 총체적 진실을 담아내는 언론이 되기 위해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뉴스 가치의 공정성 회복도 필요해 보입니다. 이준웅과 김경모(2008)은 ‘바람직한 뉴스’의 구성 조건으로 공정성, 타당성, 진정성 3가지를 제시한 뒤, 공정한 뉴스 보도를 위해서는 다양성과 담론적 공정성뿐만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는 ‘외연적인 공정성’도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즉 그들은 “언론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뉴스 이용자를 가정하고 있으며, 언론이 다루는 주제는 해당 사회의 유지와 재생산에 위협을 주거나 핵심 가치나 규범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의 내용을 다룬다는 전제와 절차적 합의”(29쪽)가 있다면 담론은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갈등적 사안에 대한 논쟁이 첨예한 공공영역에서 언론이 최소 권력자의 주장을 따로 전달하지 않는다면, 즉 언론의 담론적 조정을 위한 관여가 없다면, 바로 그 최소 권력자의 목소리는 더욱 약화돼 사회적 숙의나 정책 결정과정에 그 주장이 반영될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요컨대, 담론 권력의 차별적 강화 가능성 또는 공론권의 의사소통 구조의 왜곡 가능성을 사전 조정하고 차단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일이 뉴스의 외연적 공정성이 추구하는 가치가 된다. 소수 의견의 보호와 조절을 통해 공정성의 외연을 확장해 간다는 것이다.”(이준웅 김경모, 2008, 29쪽)   


   물론 저널리즘 현장으로 돌아올 때 판단은 다시 쉽지 않습니다. 저널리즘의 뉴스 가치는 여전히 뉴스 판단에서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고,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외연적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기자들이 저널리즘 뉴스가치와 공정성의 확장 속에서 끊임 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이유입니다.

   공선옥 소설 『꽃피는 시절』의 서해정이 기자들에게 보내는 의심은 무척 아픕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해정처럼 기자들에게 의심의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기자들의 이 같은 입장도 조금 고려해주길 부탁합니다. 아직도 수많은 기자들이 이런 고민을 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실을 위해 뛰고 있으니까요. 아울러 기자들도 혹시 현실에 둔감하거나 미래를 잊어버린 기자의 모습이 아니었는가 고민과 반성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서해정의 기운이 매섭고 또 매섭습니다.



<참고문헌>

공선옥(2011). 『꽃피는 시절』. 서울: 창비.

이준우(2002). 신문 취재보도론. 서정우 편(2002). 『현대신문학』(191-27). 서울: 나남.

이준웅 김경모(2008). ‘바람직한 뉴스’의 구성조건: 공정성, 타당성, 진정성. 『방송연구』, 67호, 9-44.

임영호(2000). 『신문원론』. 서울: 연암사.

*이 게시글은 한국언론재단의 블로그 <다독다독>에 기고한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Posted by 김용출(KIM, YONG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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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이오덕의 『이오덕 유고 시집』


   밝지 않은 형광등 아래에서 두툼한 그의 『우리글 바로쓰기』 『우리 문장 쓰기』 등을 읽으며 한없이 느끼고 깨달았으며 다짐하곤 했습니다.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그의 목소리는 가슴에 쏙쏙 박혀 오이처럼 주렁주렁. 군청색 군복에 육신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포박당했던 1990년대 초반이었죠. 아동문학가이자 교육자, 한글운동가로 평생 우리말과 글 살리기에 앞장서온 이오덕(1925∼2003) 선생에 대한 아스라하고, 개인적인 기억의 파편입니다.


   이오덕 선생의 미발표 시가 수록된 유고시집 『이오덕 유고 시집』(고인돌)이 최근 출간됐습니다. 1925년 경북 청송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오덕 선생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보기 좋아’ 공무원을 그만두고 43년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에 평생을 바쳐 ‘교육의 성자’로 불리기도 했지요.

   이번에 출간된 『이오덕 유고 시집』는 무려 983쪽에 이르는데, 그냥 양만 늘리려고 두툼한 게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시가 빽빽하게 풍경을 이루는 모습니다. 마지막 984쪽에는 시골의 작은 집과 내리쬐는 태양을 배경으로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평화로운 그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유고시집은 1950년대부터 200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발표하지 않은 시 341편이 시대순으로 6부로 나눠 실렸습니다. ‘참꽃이 필 때면’ ‘학교 가는 길’ 등 생전에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에게 준 시 7편도 처음 공개됐고요. 각 부마다 이오덕 선생의 삶을 정리해준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회장은 “고인은 몸이 많이 쇠약해진 뒤에도 마을과 산을 오르내리면서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귀담아 들으며 글을 썼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출판사측은 “아들 이정우씨가 고인의 유품과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갈무리됐다”고 전했고요.


            (사진=고인돌 제공)
 

   시집으로 들어가봅니다. 먼저 가난했던 1950년대 그의 시에는 가난하던 아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눈물의 폭포를 이룹니다. 교사였던 그가 가난 때문에 학비를 내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지금도 가슴 뭉클.


출석부에 또 하나

붉은 줄을 긋는다

수업료를 안 가져 온다고 꾸중당한 아이

교무실에 불려와 울던 아이.

한 달 전부터 소식이 없더니

오늘 아침에 편지가 왔다.

“서울에는 피를 빼어가며

고학하는 학생이 많다는데,

피를 사줄 사람도 없으니……’ 하고,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출석부에 또 하나 붉은 줄을 긋는다

…(중략)…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는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손을 호호 불어가며 지게를 지고 산을 넘고 있을까?

오늘 아침엔 따스한 죽이라도 배불리 먹었을까?

…(중략)…

이제 시업(첫 수업시간)종이 치는데, 종소리가 울려오는데

출석부를 들고 교실에 들어가면

나는 또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출석부> 중에서)


   또 교단을 떠난 1990년대의 시들엔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에 힘을 쏟던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글 바로쓰기』 『우리 문장 쓰기』 등을 펴내 한글세대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그 아닙니까. 


이른 봄 돋아나는 냉이 민들레

논밭 둑 물들이는 할미꽃 제비꽃

온 산에 붉게 타는 진달래꽃

그 모든 꽃 이름 아름다워라

우리말이 있기에 우리가 있지요.(<우리말이 있기에> 부문)


   아울러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아리랑 나라 사람보다 더 아리랑 나라를 생각한다는 러시아 출신 박노자 오슬로국립대학 교수에 대한 지적도 눈길을 끕니다. 박노자씨가 2001년 8월29일자 한 신문에 쓴 <죽음보다도 무서운 기억>을 읽고, 8월31일 아래와 같이 지적합니다. 박노자씨의 논지와 주장에 대해선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글에 붙은 ‘혹’에 대해서는 추상 같이 지적하는 내용이죠. 박노자씨만이 아닌, 글을 쓰는 우리 모두를 향해 있는 듯해 저 또한 부끄럽습니다.  


우선 “나는”이라고 하는 말부터 할 줄 모르고 “필자는” 해놓은 것부터 그렇고,

“보면서”할 것을 “목격하면서”라고 쓴 것부터 그렇지요.

이것은 참으로 흉측한 부스럼이요, 혹입니다.

당신은 이 땅에 있는 동안 참 많은 가르침을

학생들에게 주었지만

그렇게 하는 동안에 그만 스스로

그 무서운 혹을 몸에 붙이고 말았으니

너무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한국을 떠났으니 부그 그곳 오늘로 파란 하늘에서

그 부스럼 혹을 깨끗이 씻어 없앨 수 있기를 바랍니다.(<박노자의 말7> 중)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이오덕 유고 시집』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죽음과 되삶(재생), 행복 등에 대한 시들입니다. 아마 그것은 진리를 깨친, 그래서 서늘한 시이기 때문이겠지요. 시를 넘어서는 감동이 있습니다.  

   1950년대 말 이오덕 선생은 신부전증을 앓아 경북 상주의 누나의 집에서 치료하며 죽음을 대면합니다. 1960년 10월8일 쓴 시 <죽음(병상일기에서)-우주는 조화된 하나의 기관이다>에는 죽음과 대면하던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죽음마저 삶의 한 조각으로 껴안은 모습이 서늘하고 서늘합니다.


내 비록 이 세상에서

하고픈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언제나 한번은 돌아갈 고향

죽음을 생각하면 항상 즐겁다.

거기서 나는 풀과 나무의 새들

산악과 바다와 별들, 그리고

먼 옛날의 성현들과 함께 호흡하리니

우주로 통하는 모든 길이 그것에 있어라.

거기서 나는 다시

한 마리 새나 짐승으로 태어나도 좋고

한 방울 이슬

혹은 또 다시 어느 가난한 나라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도 즐겁다.

내 비록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죽는다 하더라도

언제나 한 번은 돌아갈 고향

신은 내 이루지 못한 소원을 위하여

포근한 안신과 다시 즐거운 생의 호흡을

언제나 약속하고 있음이여!(<죽음> 전문)


   죽음을 대면했던 이오덕 선생은 3년여 치료 끝에 가까스로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고 재생의 기쁨을 맞봅니다. 1961년 5월21일 쓴 시 <재생>에는 새 삶을 받으면서 이제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리라고 다짐하는 모습이 담겨 있죠. 그래서 우리에게 묻는 듯합니다. ‘내 것만’이 아닌 삶을 살고 있는가, 아직 그대는.   


그러나, 나는 이미 죽었던 몸

슬픔과 기쁨이 둘이 될 수 없고

삶과 죽음은 하나인 것

이제는 덤으로 찾아온 목숨의 보람을 위하여

이제는 진정 즐거이 찾아올 죽음을 위하여

눈앞만 바라보던 그런 일은 말아야지

내 것만 생각하던 그런 일은 말아야지

이름 없는 한 포기 풀이라도 너무나 즐겁다

길가에 버려진 한 조각 돌멩이의 빛나는 생명이여!

내가 있을 자리를 찾아

내게 알맞은 일을 하고

내가 맺을 열매를 맺는 날

나는 즐겁게 떠나가리라.

아아, 하늘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여!

나는 살았는가?

보람 있는 일을 하리라

보람 있게 살아가리라(<재생> 부문)


   이오덕 선생은 2003년 8월25일 온몸에 퍼진 암에도 의연하게 삶을 살다가 작은 수첩에 마지막 일기를 쓰고 태연하게 돌아갑니다. 죽는 날까지 펜을 들고 글과 함께 했다는 이주영 회장의 전언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오덕 선생은 갔지만, 행복이야말로 지난한 과정의 끝자락에서 목표 달성을 통해 맞보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꿈이 있는 것 자체가, 과정과 여정 자체가, 결국 ‘지금 여기’라는 가르침은 남아 우리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2002년 2월12일의 시 <행복>이 좋고 또 고마운 이유입니다.


설날 아침

감자 세 개 구워먹고

앉았으니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온 방에 가득 찼다.(<행복> 전문)


 

참고문헌


이오덕(2011). 『이오덕 유고시집』. 파주: 고인돌.

Posted by 김용출(KIM, YONG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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