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시인의 사랑과 문인 편린-고은의 『상화시편』

   할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할 수 있었음에도 안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시 20대에 사랑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30대에도 사랑보다 허무가, 죽음이 먼저 왔다고 회고합니다. 시대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요, 자신의 삶의 굴곡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스무살의 사랑 내 것이 아니었다

소월이나 네루다의 것이었다

스무살도

서른살도

사랑보다

허무가

허무에 앞서

죽음이 내 것이었다


…(중략)… 


식민지 36년의 굶주림 끝

나 자신의 학대

분단 몇십년의 만취 끝

나 자신의 저주

사랑은 너무 늦게 내 몸에 박힌 화살들이었다(<지각> 중에서)


 시인 고은씨는 53년 문학인생 처음으로 펴낸 사랑시집 『상화 시편-행성의 사랑』에서 “여기 있어도/ 어디에 있나”라며 아내를 ‘명사도 동사도 아닌, 허사’라고 노래합니다. 창비 제공.

   노벨문학상 후보에 꾸준히 오르내리는 시인 고은(78)씨의 얘기입니다. 이런 고은 시인이 1953년 문학인생 처음으로 사랑시집 『상화 시편-행성의 사랑』(창비)을 펴냈습니다. 지난해 완간된 『만인보』(전 30권) 등 수많은 시를 써왔지만, 고은씨가 사랑을 정면으로 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생애 첫 연시집을 펴낸 이유를 그는 지난 7월6일 이렇게 밝혔습니다.

   “인류 보편적 가치인 사랑, 이것을 세상에 내보이는 만용(蠻勇)을 용기로 삼았습니다. 한 인간이 한 인간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받는 감동을 억제할 수 없어 이렇게 됐어요.”

    고은 시인은 이날 서울 무교동 한 식당에서 막걸리를 한 잔 걸친 뒤 기자들에게 “아내와 한 30년 살면서 사소한 일상의 티끌 같은 시간의 집적, 시간의 도래 자체가 참 감동적이었다”며 감동은 사건과 드라마가 아닌, 일상으로 왔다고 말했습니다. 흰 모자에 웅크린 열정은 가슴으로, 목소리로 피어났습니다.

    고은씨의 연시집 『상화 시편』은 1974년 만나고 1983년 결혼, 시인의 문학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아내 이상화(64·중앙대 영문과 교수)씨에게 온전히 바치는 노래입니다. 형상화할 수 없는 꽃밭을 상징화한,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 표지부터가 벌써 심상치 않습니다.


                                      『상화 시편-행성의 사랑』.창비 제공.

   시집에는 사랑에 행복해하고, 애달파하며, 사랑을 그리워하고, 사랑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한 남자’로서의 고은씨의 모습이 진솔하게 담겨 있습니다. 시집은 병풍 같은 사랑의 풍속화가 됩니다.

   저는 이 시집에서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시가 아닌, 고은 부부 사랑화의 풍경을 주목합니다. 고은씨는 1974년 겨울 아내 이상화로부터 긴 장문의 편지를 받고 사랑을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편지 글에 꽂힌 사랑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듯합니다. 고은씨는 이날 “상화가 나를 결정해버렸다”고 말했습니다.


1974년 겨울

그녀의 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처음도 끝도 없는 긴 아침 강물의 편지였습니다

황량한 수렛길에서

그것도 옷깃 여미고 읽을 줄도 몰랐습니다 딴전의 술만 마셨습니다(<아내의 편지> 중)


   1983년 5월5일 서울 수유리 안병무씨의 집마당에서 열렸던 고은 부부의 아스라한 결혼식. 잔디 뒤 병풍 같은 느티나무 감나무 단풍나무 상수리나무 후박나무 두런두런 합니다.


신부 어머니 조덕순

신랑 어머니 최점례

주례 함석헌

축시 문익환

축사 이문영 백낙청

축도 문재린

인사말 안병무

사회 리영희

이효재가

미국에서 작곡한 신랑의 시 노래를 들려주었다


…(중략)…


신랑 고은은

신부 이상화는

그곳에서 어서어서 달아났다

한강 기슭 내려다보며

둘이 되었다(<수유리> 중)


   또 고은 부부의 소소한, 그러면서도 너무나 소중한 일상이 고스란히 풍경으로 포개지기도 합니다. 퇴근하는 아내를 자전거로 마중나가는 모습이란. 그리고 자전거를 끌고 타고 가면서 두런두런 얘기하는 부부의 모습이란. 


자전거에

상화를 태우고

상화 남편은 견마 잡혔다

…(중략)…

상화 남편은

장미골 모서리를 돌 때

오늘 쓴 시 이야기를 한다

상화는 누이인 듯 누나인 듯

상화 남편의 서투른 이야기를 듣는다

자전거 바큇살에 끼인 풀이 떨어져나갔다(<자전거> 부문)


   또 아내가 임신 했을 때는 어떠했습니까. 고은씨는 2층에서 원고지 열장을 쓰다가 내려와 아내의 배를 만지곤 했다고 합니다. 다시 2층으로 올라가 원고지 열장을 쓴 뒤 또 내려와 아내의 배를 만집니다. 이렇게 하기를 10여회. 원고지는 100매를 훌쩍 넘어섭니다.


나는 겨우 원고지 열장 쓰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내려와 아내를 본다

2층으로 올라가

또 열장을 쓰고 내려와

아내의 배를 만져본다

아내의 뱃속을 밤 지새우는 바닷속 아기를 만나본다

하루 백 장이면 열 번을 내려온다(<임신> 중에서)


   그런데 또 천하의 고은씨가 아내에게 꾸중을 듣고 쩔쩔 매는 모습에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요. 아내에게 지청구를 듣고선 술맛조차 잃은 모습이란. 오숨 마저 숨죽여버리는 그 범인의 모습조차 사랑이었습니다. 


네가 화낼 때

나는 사흘이나 나흘이나 죽어버린다

밥맛 없이

밥 먹는다

술도 물이 된다

네가 화낼 때

몇달 만에 화낼 때 손가락으로 식탁을 똑똑 두드릴 때

이 세상 전체 캄캄하다

숨 죽인다


도망갈 데 없다


장자 남화경에도

숨을 데 없다


아무도 모르리라

화장실에서

내 오줌도 바로 숨죽인다(<네가 화낼 때> 전문)


   그리고 세월이 흐른 어느 금요일 저녁. 고은 부부는 버스를 타고 함께 안성으로 돌아가면서 마침내 삶을 넘어서는 서늘한 사랑을 확인합니다. 죽음조차 넘어선, 그래서 오히려 현실에서 빛나는.


아내는 신중하디신중하게 입을 연다 그 말이 나오다 만다

죽어서 함께 있어요

이렇게 함께 있어요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튼다

삶의 다음에 삶은 없다


…(중략)…


나는 입속에서 답한다


맞아

맞아

이데아는 없어!

이데아는 만년의 가설이야!(<귀로> 중)


   고은씨는 아내는 자신의 인생에서 담임 선생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시가 진실인가에 대해 회의할 때, 후회와 무효를 생각할 때, 다시 후회가 진실의 가장자리였던가 생각하는 순간, 그녀는 진실을 하나씩 가르쳐줬다는 것이죠. 고은씨는 그래서 “결혼 이후 나온 시의 절반은 상화가 했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내 시라는 것이 진실이었던가

얼마나 내 시라는 것이 거짓이었던가

얼마나 내 떠돌이 날들의 밤하늘

그 잠들 줄 모르는 행각이

거짓투성이 그 비탈이었던가


오, 후회의 무효여

얼마나 내 후회가 진실의 그 가장자리였던가


이쯤이었다

이쯤이었다


밤 이슥히 돌아온

밀물 위

뱃고동소리


다 받아들여

진실을 아늑자늑 가르쳐준 사람


…(중략)…


운명의 여름 가을 상화(<담임>중에서)


   고은씨는 그래서 아내 이상화에 대해 아내를 ‘명사도 동사도 아닌, 허사’라고 주장합니다. “여기 있어도/ 어디에 있나”라는 마음이 일 정도로 언제나 또 찾아진다는 의미이겠죠. 


상화는 명사가 아니다

동사이다

펄펄 살아

여기에 있지 않고

저기에 있나

저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나


아니 어디에 있나


나에게 상화는 명사도 동사도 아니다


어디에 있나

어디에 있나


아, 나에게

상화는 허사이다

불러도

불러도 

그가 없다


못 견디는 것이

견디는 것

방황이

방황이 끝나는 것


왜 나는 배고픈가

왜 목이 마른가

아, 상화는 어디에 있나


여기 있어도

여기 있어도

어디에 있나(<허사> 전문)


   고은씨는 “진정한 사(私)는 인류의 진실과 선, 아름다움의 출발점이며 사를 존중해야만 우리가 지향하는 공(公)도 모독당하지 않는다”며 “이 시집에는 다른 연인을 위한 가능성도 스며있기에 우리 둘만의 사사로운 시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젊은 부부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교훈은 증오하지만, 친구로선 얘기할 수 있겠다”며 “서로 사랑하기보다 서로 존경하고 섬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부문은 서정주, 보르헤스 등 국내외 유명시인이나 문단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시 속에서 언뜻 언뜻 스쳐가는, 정면이 아닌 측면의 풍경이었지만, 오히려 감흥은 더 끓어올랐습니다. 최정호의 서울 반포아트에 서정주와 한창기, 고은 부부가 가진 저녁과 술자리 풍경에서 서정주의 모습.


바야흐로 서정주의 주정이 시작된다

깐죽깐죽

한창기를 못살게 군다


자네는 왜 그렇게

하관이 쪽 빠져버렸나

자네는 아조아조 궁상이로군 천하궁상이로군(<어떤 술주정> 중)


   또 1960년대 후반, 지금은 작고한 서울대 교수 김현이 당시 학계에서 성가를 드높이던 구조주의를 말하자 고은은 술을 받으라고 대응하던 시절의 아스라한 기억도 한 폭.


1960년대 후반

김현이 슬쩍 구조주의를 말하면

내 앞에서 구조를 말하지 마

나는 실존이야

자, 실존의 술 받어라고 소리쳤다(<지각타령> 중)


   아울러 혼자가 된 보르헤스의 부인 고다마 보르헤스와의 만남도 재밌습니다. 파리 세느강을 부부가 함께 걷던 기억을 회상하며 다음 세상에서도 보르헤스를 만나겠다는 고은씨의 말에 보르헤스 부인은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장면이 재밌습니다.


내가 그녀한테 불가의 속담을 말하자

스치는 옷소매 인연도

삼생 인연이라는 것

하물며

이 세상의 부부 인연

오백번 이상이나 부부 인연 이후라는 것

다음 세상에서도

위대한 보르헤스를 만나시겠다 말하자

안 만날래요

안 만날래요 하고

단호히 말했을 때

나는 웃었다

내 아내도 웃었다

그녀도 멋쩍게 웃었다(<꼬르도바에서> 중)


                                                         『내 변방은 어디 갔나』. 창비 제공

   고은씨는 이번에 이와 함께 신작시집 『내 변방은 어디 갔나』(창비시선 332)도 펴냈습니다. 『허공』(2008) 이후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써온 114편의 신작시를 모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 신작 시집에서 ‘변방’의 시선과 목소리로 중심의 문명을 일갈합니다. 나이도 막지 못하는 도저한 시정신이 활연합니다.

 

<참고문헌>

고은(2011). 『상화 시편-행성의 사랑』. 파주: 창비.

고은(2011). 『내 변방은 어디 갔나』. 파주: 창비.

Posted by 김용출(KIM, YONG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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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15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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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3.21 1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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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2.03.27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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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2.04.05 1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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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 5시와 가을-도종환의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도종환씨의 10번째 시집 표지. 창비 제공(이하 동일)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서)


    『접시꽃 당신』의 시인 도종환(57)씨가 5년 만에 펴낸 열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펴냄)에서 자신의 인생 시간을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오후 5시는 ‘질풍노도’의 낮 12시와 오후 1시 사이를 온전히 기억하면서도, 아직 시간이 있음을 감사할 수도 있고 찬란한 황혼을 생각할 수도 있는 성찰의 시간쯤 되겠지요.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중)



   1980년 광주항쟁을 계기로 교육운동과 민족문학운동을 펼쳐온 도종환씨는 이번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서도 우리 사회의 모순과 현대 문명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카이스트>에선 젖은 꽃잎 비에 다시 젖으며/ 수직으로 떨어져내렸다“며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하게 만드는 현실을 비판하고, <사막>에서는 서로가 가시가 되는 세태와 문명을 꼬집습니다.


마른 바람이 모래언덕을 끌고 대륙을 건너는

타클라마칸 그곳만 사막이 아니다

황무지가 끝없이 이어지는 시대도 사막이다

저마다 마음을 두껍고 둔탁하게 바꾸고

여리고 어린 잎들도 마침내 가시가 되어

견디는 일 말고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곳

그곳이 사막이다

우리 안에도 선인장 가시 같은 것이 자라나

여차하면 남을 찌르고 내게 날카로워지는데

뜨거움은 있으나 서늘한 숨결은 없지 않는가

오직 전속력으로 그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곳

연민도 눈물도 없이 사는 이곳이 사막 아닌가

눈 줄 데는 없는 황량한 메마른 풍경 속에서

모두 다 카우보이가 되어버린(<사막> 전문)


   하지만 이번 시집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자신의 여러 인생 굴곡을 찬찬히 반추하는 부문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그는 1980년 광주항쟁 당시 군인 신분으로 언덕에서 M16소총 가늠자를 들여다보며 광주시민군이 다가오기를 기다린 경험 이후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왔습니다. ‘분단시대’ 동인 결성과 민족문학운동, 아내의 죽음, 해직과 구속과 복직 등. 또 심신피로로 쓰러진 뒤 교직을 그만두고 속리산에서 칩거하기도 했지요. 그야말로 온갖 시대와 세월의 풍상을 겪어서 이 자리에 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남아있다는 점에서 인생의 계절로 본다면 가을 오후쯤 될 터.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가을 오후> 전문)


   그래서 이번 시집은 은은합니다. 세상에서, 우주에서, 인생에서, 삶에서, 그리고 시에서조차 은은합니다. 질풍노도의 분노를 우뚝 넘어서고, 죽음 앞에 이른 절망 또한 아직 이른 풍경.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아련한 향기가 스미어 있다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살구꽃 위에 내린

맑고 환한 빛이 들어 있다

강물도 저녁햇살을 안고 천천히 내려갈 땐

은은하게 몸을 움직인다

달빛도 벌레를 채워주는 나뭇잎 위를 건너갈 땐

은은한 걸음으로 간다

은은한 것들 아래서는 짐승도 순한 얼굴로 돌아온다

봄에 피는 꽃 중에는 은은한 꽃들이 많다

은은함이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꽃길을 따라

우리의 남은 생도 그런 빛깔로 흘러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 잡고 은은하게 물들어갈 수 있다면(<은은함에 대하여> 전문)


   물론 인생의 오후 5시쯤, 가을 오후라고 해서 과거가 완전히 부정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니까요. 마치 비에 젖어도 향기를 뿜는 라일락꽃처럼. 그렇다고 미래가 벌써 현실을 대치하지도 않아야겠지요.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도종환씨는 인생의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가을 오후쯤에 서서 예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자연이 펼쳐집니다. 정오의 강렬한 태양도 아니요, 여름 거센 태풍이 아닌. 큰 바람이 지나갔지만, 이제는 자잘한 바람에 흔들리는 ‘풍치의 나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이를 빼고 치과를 나서니 스산한 바람이 분다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걸 그동안 몰랐다

아니 통증을 전하는 방식으로 여러 차례

알려왔으나 애써 무시하며 지냈다

이런 일 여러번 겪오본 아내는

바람이 사소하게 불어도 흔들릴 풍치의 나날과

둘 다 연금도 퇴직금도 없이 견뎌야 할 불안한

노후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허전해지는 삶의 한 모서리 사리물고

초가을에서 깊은 가을로 돌아오는 길

웅송그리며 서 있는 과꽃 몇송이가 보인가

이파리 몇 개는 벌레 먹고 군데군데 구멍이 났는데도

자줏빛 꽃 곱게 피우고 있는 게 예쁘다(<발치(拔齒)> 전문)


    그는 인생의 오후 5시쯤 가을 오후쯤 되면 스스로 처음이, 성채가, 신이 되겠다는 치기를 넘어, 나무 하나로 숲의 일부가 되는 것이 기쁨임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고 노래하는 듯합니다. 다음의 시가 서늘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발자국

아, 저 발자국

저렇게 푹푹 파이는 발자국을 남기며

나를 지나간 사람이 있었지(<발자국> 전문)

  

    도종환씨는 2008~2009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아 집필실인 충북 보은의 구구산방과 서울을 오가기도 했습니다. 아마 때로는 막차를 잡아타고 가면서 총총한 별 하나 되기를 꿈꾸기도 했을 것입니다. 괜찮다고, 네 편이라고 이마 씻어주는.


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

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맴돈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내가 별을 떠날 때도 있어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별 하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별 하나> 전문)


   오늘도 바람이 휘감은 꽃, 비에 젖은 한송이 꽃을 보면서 찬란한 황혼, 총총히 빛나는 별을 꿈꾸는 도종환씨의 겨울이 벌써 궁금합니다. 그때 하늘의 별은, 땅위의 꽃은 누구의 별이고 꽃입니까.



<참고문헌>

도종환(2011).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파주: 창비.

Posted by 김용출(KIM, YONG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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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이오덕의 『이오덕 유고 시집』


   밝지 않은 형광등 아래에서 두툼한 그의 『우리글 바로쓰기』 『우리 문장 쓰기』 등을 읽으며 한없이 느끼고 깨달았으며 다짐하곤 했습니다.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그의 목소리는 가슴에 쏙쏙 박혀 오이처럼 주렁주렁. 군청색 군복에 육신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포박당했던 1990년대 초반이었죠. 아동문학가이자 교육자, 한글운동가로 평생 우리말과 글 살리기에 앞장서온 이오덕(1925∼2003) 선생에 대한 아스라하고, 개인적인 기억의 파편입니다.


   이오덕 선생의 미발표 시가 수록된 유고시집 『이오덕 유고 시집』(고인돌)이 최근 출간됐습니다. 1925년 경북 청송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오덕 선생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보기 좋아’ 공무원을 그만두고 43년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에 평생을 바쳐 ‘교육의 성자’로 불리기도 했지요.

   이번에 출간된 『이오덕 유고 시집』는 무려 983쪽에 이르는데, 그냥 양만 늘리려고 두툼한 게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시가 빽빽하게 풍경을 이루는 모습니다. 마지막 984쪽에는 시골의 작은 집과 내리쬐는 태양을 배경으로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평화로운 그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유고시집은 1950년대부터 200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발표하지 않은 시 341편이 시대순으로 6부로 나눠 실렸습니다. ‘참꽃이 필 때면’ ‘학교 가는 길’ 등 생전에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에게 준 시 7편도 처음 공개됐고요. 각 부마다 이오덕 선생의 삶을 정리해준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회장은 “고인은 몸이 많이 쇠약해진 뒤에도 마을과 산을 오르내리면서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귀담아 들으며 글을 썼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출판사측은 “아들 이정우씨가 고인의 유품과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갈무리됐다”고 전했고요.


            (사진=고인돌 제공)
 

   시집으로 들어가봅니다. 먼저 가난했던 1950년대 그의 시에는 가난하던 아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눈물의 폭포를 이룹니다. 교사였던 그가 가난 때문에 학비를 내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지금도 가슴 뭉클.


출석부에 또 하나

붉은 줄을 긋는다

수업료를 안 가져 온다고 꾸중당한 아이

교무실에 불려와 울던 아이.

한 달 전부터 소식이 없더니

오늘 아침에 편지가 왔다.

“서울에는 피를 빼어가며

고학하는 학생이 많다는데,

피를 사줄 사람도 없으니……’ 하고,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출석부에 또 하나 붉은 줄을 긋는다

…(중략)…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는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손을 호호 불어가며 지게를 지고 산을 넘고 있을까?

오늘 아침엔 따스한 죽이라도 배불리 먹었을까?

…(중략)…

이제 시업(첫 수업시간)종이 치는데, 종소리가 울려오는데

출석부를 들고 교실에 들어가면

나는 또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출석부> 중에서)


   또 교단을 떠난 1990년대의 시들엔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에 힘을 쏟던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글 바로쓰기』 『우리 문장 쓰기』 등을 펴내 한글세대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그 아닙니까. 


이른 봄 돋아나는 냉이 민들레

논밭 둑 물들이는 할미꽃 제비꽃

온 산에 붉게 타는 진달래꽃

그 모든 꽃 이름 아름다워라

우리말이 있기에 우리가 있지요.(<우리말이 있기에> 부문)


   아울러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아리랑 나라 사람보다 더 아리랑 나라를 생각한다는 러시아 출신 박노자 오슬로국립대학 교수에 대한 지적도 눈길을 끕니다. 박노자씨가 2001년 8월29일자 한 신문에 쓴 <죽음보다도 무서운 기억>을 읽고, 8월31일 아래와 같이 지적합니다. 박노자씨의 논지와 주장에 대해선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글에 붙은 ‘혹’에 대해서는 추상 같이 지적하는 내용이죠. 박노자씨만이 아닌, 글을 쓰는 우리 모두를 향해 있는 듯해 저 또한 부끄럽습니다.  


우선 “나는”이라고 하는 말부터 할 줄 모르고 “필자는” 해놓은 것부터 그렇고,

“보면서”할 것을 “목격하면서”라고 쓴 것부터 그렇지요.

이것은 참으로 흉측한 부스럼이요, 혹입니다.

당신은 이 땅에 있는 동안 참 많은 가르침을

학생들에게 주었지만

그렇게 하는 동안에 그만 스스로

그 무서운 혹을 몸에 붙이고 말았으니

너무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한국을 떠났으니 부그 그곳 오늘로 파란 하늘에서

그 부스럼 혹을 깨끗이 씻어 없앨 수 있기를 바랍니다.(<박노자의 말7> 중)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이오덕 유고 시집』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죽음과 되삶(재생), 행복 등에 대한 시들입니다. 아마 그것은 진리를 깨친, 그래서 서늘한 시이기 때문이겠지요. 시를 넘어서는 감동이 있습니다.  

   1950년대 말 이오덕 선생은 신부전증을 앓아 경북 상주의 누나의 집에서 치료하며 죽음을 대면합니다. 1960년 10월8일 쓴 시 <죽음(병상일기에서)-우주는 조화된 하나의 기관이다>에는 죽음과 대면하던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죽음마저 삶의 한 조각으로 껴안은 모습이 서늘하고 서늘합니다.


내 비록 이 세상에서

하고픈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언제나 한번은 돌아갈 고향

죽음을 생각하면 항상 즐겁다.

거기서 나는 풀과 나무의 새들

산악과 바다와 별들, 그리고

먼 옛날의 성현들과 함께 호흡하리니

우주로 통하는 모든 길이 그것에 있어라.

거기서 나는 다시

한 마리 새나 짐승으로 태어나도 좋고

한 방울 이슬

혹은 또 다시 어느 가난한 나라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도 즐겁다.

내 비록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죽는다 하더라도

언제나 한 번은 돌아갈 고향

신은 내 이루지 못한 소원을 위하여

포근한 안신과 다시 즐거운 생의 호흡을

언제나 약속하고 있음이여!(<죽음> 전문)


   죽음을 대면했던 이오덕 선생은 3년여 치료 끝에 가까스로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고 재생의 기쁨을 맞봅니다. 1961년 5월21일 쓴 시 <재생>에는 새 삶을 받으면서 이제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리라고 다짐하는 모습이 담겨 있죠. 그래서 우리에게 묻는 듯합니다. ‘내 것만’이 아닌 삶을 살고 있는가, 아직 그대는.   


그러나, 나는 이미 죽었던 몸

슬픔과 기쁨이 둘이 될 수 없고

삶과 죽음은 하나인 것

이제는 덤으로 찾아온 목숨의 보람을 위하여

이제는 진정 즐거이 찾아올 죽음을 위하여

눈앞만 바라보던 그런 일은 말아야지

내 것만 생각하던 그런 일은 말아야지

이름 없는 한 포기 풀이라도 너무나 즐겁다

길가에 버려진 한 조각 돌멩이의 빛나는 생명이여!

내가 있을 자리를 찾아

내게 알맞은 일을 하고

내가 맺을 열매를 맺는 날

나는 즐겁게 떠나가리라.

아아, 하늘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여!

나는 살았는가?

보람 있는 일을 하리라

보람 있게 살아가리라(<재생> 부문)


   이오덕 선생은 2003년 8월25일 온몸에 퍼진 암에도 의연하게 삶을 살다가 작은 수첩에 마지막 일기를 쓰고 태연하게 돌아갑니다. 죽는 날까지 펜을 들고 글과 함께 했다는 이주영 회장의 전언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오덕 선생은 갔지만, 행복이야말로 지난한 과정의 끝자락에서 목표 달성을 통해 맞보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꿈이 있는 것 자체가, 과정과 여정 자체가, 결국 ‘지금 여기’라는 가르침은 남아 우리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2002년 2월12일의 시 <행복>이 좋고 또 고마운 이유입니다.


설날 아침

감자 세 개 구워먹고

앉았으니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온 방에 가득 찼다.(<행복> 전문)


 

참고문헌


이오덕(2011). 『이오덕 유고시집』. 파주: 고인돌.

Posted by 김용출(KIM, YONG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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