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엇갈린 사안, 기자들은 어떻게 쓰나(객관보도) -공선옥의 『꽃피는 시절』

객관성 상실에 분노하는 영희


   “이 기사 보셨어요?”

   신문을 내밀어 보였다.

   기사의 제목은 ‘순양석재 해법의 그날은 언제?’였다. 그런데 그 아래 소제목이 ‘막무가내 주민, 선량한 기업 발목 잡아’였다.

   ...(중략)...

   영희는 기사를 차마 끝가지 읽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문장력이 좋은 건 아니지만, 문장도 조악할뿐더러, 언론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양식인 공정성이라곤 아예 없는, 기사의 탈을 쓴 업체 편들기에 불과한 글이었다. 언젠가부터 고질이 된 두통이 띠잉, 하고 몰려왔다(공선옥, 2011, 187-188쪽).


   위의 글은 시골마을 유정면에 들어선 쇄석공장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투쟁’을 그린 공선옥씨의 장편소설 『꽃 같은 시절』의 한 대목입니다(공선옥의 소설 『꽃 같은 시절』에 대한 설명은 이미 앞의 글에서 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합니다). 이영희가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을 다룬 지역 신문의 기사를 보고 분노하는 장면이죠. 즉 최소한의 객관성이나 공정성도 없고 노골적인 기업 편들기를 한 기사라고 지적합니다. 도대체 영희는 왜 분노한 것일까요? 그가 분노한, 소설 속의 지역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막무가내식 싸움으로 피해는 결국 주민들에게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의 군청 앞 시위와 농성이 한판가 몰려오는 겨울까지 계속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이 시위의 실질적 리더로 지목한 이모씨, 그리고 최근에 합류한 서모씨가 환경단체나 각종 매스컴과의 연계를 주도한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순양경찰과 뜻있는 인사들은 대책위의 막무가내식 좌충우돌식 투쟁방식에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업체에 대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대책위는 이미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행위를 하고 있고, 시위 선동자들이 나중 일은 생각지 않고 끝까지 대결구도로만 몰아가면 결국 피해는 순박한 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은 불은 보듯 뻔한 결과라고 말하고, 주민들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조속히 알려야 할 의무를 가진 대책위가 고의로 그러한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공선옥, 2011, 187-188쪽).


   소설 속 기사 요지는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이 이영희와 서해정이 배후에서 주도하면서 막무가내식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면서 결과적으로 주민들만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영희는 이 기사에 대해 최소한의 객관성, 공정성을 상실한 노골적인 기업 편들기 기사라고 분노하는데, 이영희가 생각한 기사와 저널리즘은 최소한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진 객관보도, 객관주의 보도에 대한 요구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가 공선옥. 사진=창비 제공)



절망 주는 외눈박이 언론 


   그렇다면 이 기사가 과연 영희가 요구하는 객관보도,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살펴보기 전에, 근현대 저널리즘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현재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객관보도 또는 객관주의 저널리즘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해보죠.

   언론사에서 객관보도(objective reporting), 객관주의 저널리즘이 확립되기 전의 주요한 저널리즘 흐름은 정파적, 당파적, 상업적 저널리즘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즉 객관보도,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19세기와 20세기 전반 미국 대중지들이 정당이나 거대 상인에 예속된 정파적 언론으로부터 자신을 구분하고자 시도하면서 태동하게 됐죠. 정파성과 상업성으로부터 분리되기 위해 객관성,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객관성과 사실성을 강조하고, 인터뷰 기법이 발전됐으며, 우리가 잘 아는 역피라미드형 글쓰기 등이 핵심 요소로 발전했습니다. 이 같은 객관보도,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저널리즘 현장에서 직업적 규범으로 자리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객관보도는, 비록 기자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역사문화적 정치사회적 경제산업적 경험 등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을 최소화하고 진실을 추구하면서 편파적이지 않는 보도를 지향하는 보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유일상, 2004, 110쪽 참고).

   스테펜스(Stephens, M.)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객관보도,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위한 4가지 원칙 또는 규칙을 제시합니다. 첫째, 기자의 개인적인 선호가 기사에 명백하게 드러나서는 안되고, 둘째, 특정한 가치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용어(‘바보 같이’ ‘반동적’ 같은 말)의 사용을 피해야 하며, 셋째, 균형성(balance) 또는 공정성(fairness)을 객관성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고, 넷째, 기자는 정보의 ‘책임 있는 취재원’에 대한 논쟁을 유발한 가능성이 있는 주장에 대해 출처(attribution)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합니다(유일상, 2004, 109~110쪽 참고).


   객관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사실성의 강조, 역피라미드형 글쓰기, 인터뷰 기법의 발전, 균형적인 글쓰기, 정파적 입장이나 사회적 갈등으로부터 초연함(detachment) 등이 제시되기도 했다(Mindich, 1998)

Mindich, D.T.Z(1998). just the facts: How 'objectivity' came to define American journalism.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이제 소설 속에서 이영희가 분노했던 기사를 스테펜스가 제시한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위한 4가지 원칙을 적용시켜 분석해 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기사는 객관주의 저널리즘에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첫째, 기사에는 기자의 개인적인 혹은 신문의 선호가 너무나 명백히 드러나고 있고, 둘째, ‘막무가내’ ‘좌충우돌’ 등 특정한 가치가 명백히 드러나는 용어가 사용됩니다. 셋째, 할머니들의 문제의식과 주장은 거의 볼 수 없는 등 균형성이나 공정성은 현저히 낮고, 넷째, 시위에 대한 비판 주장에 대한 출처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객관보도의 요건을 거의 갖춰지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민웅은 2008년 봄과 여름 미국산 쇠고기 파동 당시 이념에 따라 특정 사실과 진실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하고 반대 주장이나 진실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했던 보수와 진보 언론을 싸잡아 ‘외눈박이 언론’(one-eyed journalism)이라고 불렀는데(이민웅, 2008, 7쪽),  소설 속 기사도 ‘외눈박이 언론’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입니다.

   반면 아래의 사진에 제시된 보도는 최근 과학비즈니스벨트가 대전 대덕특구로 결정된 이후 이해관계가 엇갈린 대전과 충청권의 분위기를 전하는 기사인데, 전형적인 객관보도의 형식을 갖춘 기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기자 개인이나 신문사의 선호를 드러내지 않고, 가치가 들어간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균형성이 적절히 확보돼 있고, 출처도 명확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과학비즈니스벨트가 대전 대덕특구로 결정된 이후 이해관계가 엇갈린 대전과 충청권의 분위기를 전형적인 객관보도로 전한 『세계일보』 2011년 5월16일자 3면 기사)

 


객관주의와 검증보도에 대한 이중의 요청


   물론 현대 언론과 저널리즘 역사에서 객관보도 또한 적지 않은 문제와 한계 또한 드러나고 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사고, 범죄, 스캔들 등을 부각시키면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조셉 퓰리처 등에 의해 이른바 황색 저널리즘으로 변이되기도 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서구 유럽 사회를 강타한 메카시즘 광풍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비판도 받게 됩니다. 이처럼 객관성이란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광범위한 회의,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한계 등이 거론되면서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대체하려는 많은 저널리즘이 태동합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검증보도를 중심으로 한 탐사보도, 공공보도 등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널리즘 첫째 의무는 진실 추구, 진실 보도이고 따라서 검증에 중점을 두자며 빌 코바치 등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널리즘 특유의 진실’(journalistic truth)은 또한 단순한 정확성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대중, 기삿거리가 되는 사람이나 사건, 그리고 기자와 최초의 기사 사이에 전개되는 분류의 과정이다. 공평무사한 진실 추구라는 저널리즘 첫 번째 원칙은 궁극적으로 다른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과 저널리즘을 구분짓게 한다.”(Kovach & Rosenstiel, 2001/2003,  62쪽)


   문제는 한국의 현실, 소설 속 유정면과 이영희의 진실입니다. 탐사보도, 공공보도 등 새로운 저널리즘이 요구되는 저널리즘 현실과 함께, 아직도 정파성과 상업성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소설 속 유정면과 이영희의 현실은 객관보도,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중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저널리즘의 요청과 함께 기존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가치 또한 여전히 필요한 것이 유정면의 진실인 것이죠.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제시하는 다음의 <신문윤리실천요강>(제3조1항)이 절절해지는 이유입니다. 


   “기자는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여 보도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또한 기자는 편견이나 이기적 동기로 보도기사를 고르거나 작성해서는 안된다.”

 

<참고문헌>

공선옥(2011). 『꽃피는 시절』. 서울: 창비.

유일상(2004). 취재보도입문. 서울: 지식산업사.

이민웅(2008). 여는 글. 『저널리즘의 본질과 실천』. 파주: 나남.

Kovach, B. & Rosenstiel. T.(2001). The Elements of Journalism. 이종욱 역(2003). 『저널리즘의 기본 요소들』. 서울: 한국언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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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인정머리가 없다?(뉴스가치 편)

-공선옥의 『꽃피는 시절』


(사진=창비 제공)


   대신 형미한테 부탁하면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원회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질 계기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전화를 했다. 명색이 그래도 시사잡지 기자가 아닌가. 사연을 이야기했더니, 형미 왈,

   “언니, 그게 그러니까 말야, 무엇을 반대한다고 하는 싸움이 유정면에만 있는 게 아냐. 전국이 다 그래, 다. 내 말은 그러니까, 유정면 주민들의 투쟁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란 거지.”

   “그래, 그렇다고 쳐. 그러면, 특별하지 않으면 기사로 쓸 가치도 세상에 알릴 이유도 없다는 거야, 뭐야?”

    “요는, 그러니까, 그런 시시콜콜한 동네 이야기까지 기삿거리로 다루기엔 대한민국이 그리 한가한 나라가 아니란 말이지. 물불 안가리잖아? 불만해도 봐봐. 남대문에서, 이천에서, 광화문에서, 용산에서. 물은 또 어디야? 당장에 사대강이 있네. 언니, 근데, 사대강 중에 섬진강도 들어가나?”(공선옥, 2011, 91쪽)


   시골마을 유정면에 들어선 쇄석공장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투쟁’을 그린 공선옥씨의 장편소설 『꽃 같은 시절』의 한 대목입니다. 공선옥의 소설은 지난해 계간 『창작과 비평』에 연재한 작품을 묶은 것인데요,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횟집을 하다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영희 부부는 살 집을 찾아 시골마을에 흘러들지만, 마을 인근에 불법 쇄석공장이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할머니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집니다. 외지인 영희는 떼밀리다시피 시위 현장에서 가고 할머니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점차 ‘투사’로 변해갑니다.

   제시된 대목은 영희의 부탁을 받은 작가 서해정이 친구로 알고 지내는 시사잡지 기자 형미에게 유정면 투쟁 소식을 기사화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기자 형미는 뉴스 게재에 난색을 표시하면서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널리즘과 현실적인 접근


   형미가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에 대해 ‘특별하지 않는 이야기’라거나, 나중에 언급되지만, ‘시끄러운 순서에서 밀린다’고 지적한 것은 다소 예매한 말이지만, 저널리즘이나 학술적으로 풀어서 설명한다면 중요성이 떨어지는 이야기 또는 흥미롭지 않는 이야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즉 형미의 견해는 기본적으로 저널리즘, 신문학 등에서 뉴스를 보도할 때 작용하는 뉴스 가치(news values) 기본 개념에 매우 부합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크리스 맥두걸(Macdogall, C.)은 뉴스 가치로 적시성(timeliness), 근접성(proximity), 저명성(prominence), 영향성(consequence), 흥미성(human interest) 등을 제시했고, 존 갈퉁(Galtung, J.)은 어떤 사건사고, 현상 등이 뉴스로 보도되는 이유에 대해 빈도, 진폭, 명확성, 친밀성, 일치성, 경악성, 계속성, 조화성 등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이준우, 2002). 이에 따라 많은 국내 학자들은 시의성, 근접성, 저명성, 영향성을 중요성으로 묶고, 인간적 흥미에는 갈등, 이상성, 로맨스, 영웅 등의 세부 요소를 제시하기도 합니다(임영호, 2000; 이준우, 2002).

   저널리즘에서 강조되는 이 같은 뉴스 가치는 언론 제작과정에서 주요한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이 기사화되지 않는 소설과 달리,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족이 4.19혁명 51주년인 지난 4월19일 서울 수유리 국립묘지를 찾아 참배하려다 희생자단체 회원들의 저지로 무산된 내용은 모든 언론에서 뉴스로 처리했습니다. 이는 4.19혁명과 이승만 정권간의 역사적 평가와 화해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기사=세계일보 제공)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 소식이 뉴스로 보도되지 못한 것과 관련, 저널리즘 원론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적인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즉 한국에서는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다뤄야 할 기사는 많지만 이에 비해 기자들은 턱없이 적어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기자가 하루에도 서너개 정도의 기사를 처리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입니다. 인력과 시간, 비용 등에서 모든 지역의 사건사고를 커버할 수 없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사건사고의 경우 현실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여건이라는 얘깁니다.



공정한 뉴스란 무엇인가


   저널리즘 원칙과 한국 언론의 현실론적 차원에서 검토해봤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신문과 기사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거나 진실을 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널리즘과 한국 언론의 현실에만 집착하면서 정작 ‘지금 여기’ 우리 이웃들의 땀과 눈물,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 않느냐는 시각도 분명이 존재한다는 얘기죠. 아마 공선옥의 『꽃피는 시절』의 대목도 바로 이 같은 사회적인 또는 역사적인 진실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시끄러운 것도 다아 순서가 있단 말....”

   욱, 하고 치밀어오르는 어떤 기운 때문에 형미 말을 가로챘다.

   “순서? 순서 좋아하지 마라. 여기 지금 애기 낳고 다음날 바로 논밭에 일하러 나가야 했던 할머니들이...할머니들이...”

   이것이 무슨 조홧속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이영희한테서 전염된 게 분명했다. 이영희가 할머니들이라는 말만 발음하면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그 증세가 자기한테 옮겨올 줄이야.(92쪽)


   뉴스 가치 개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뉴스가치 또한 영원불멸하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나라와 사회 등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입니다. 순박한 유정면 할머니들이 길거리에 나오게 된 게 비록 ‘뻔한’ 중요하지 않는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들여다볼 여지는 없는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죠. 더구나  불법 탈법의 가능성이 있거나 가능성이 농후하다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줄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와 증언이 있다면, 파고들어 조명해볼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사회의 총체적 진실을 담아내는 언론이 되기 위해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뉴스 가치의 공정성 회복도 필요해 보입니다. 이준웅과 김경모(2008)은 ‘바람직한 뉴스’의 구성 조건으로 공정성, 타당성, 진정성 3가지를 제시한 뒤, 공정한 뉴스 보도를 위해서는 다양성과 담론적 공정성뿐만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는 ‘외연적인 공정성’도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즉 그들은 “언론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뉴스 이용자를 가정하고 있으며, 언론이 다루는 주제는 해당 사회의 유지와 재생산에 위협을 주거나 핵심 가치나 규범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의 내용을 다룬다는 전제와 절차적 합의”(29쪽)가 있다면 담론은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갈등적 사안에 대한 논쟁이 첨예한 공공영역에서 언론이 최소 권력자의 주장을 따로 전달하지 않는다면, 즉 언론의 담론적 조정을 위한 관여가 없다면, 바로 그 최소 권력자의 목소리는 더욱 약화돼 사회적 숙의나 정책 결정과정에 그 주장이 반영될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요컨대, 담론 권력의 차별적 강화 가능성 또는 공론권의 의사소통 구조의 왜곡 가능성을 사전 조정하고 차단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일이 뉴스의 외연적 공정성이 추구하는 가치가 된다. 소수 의견의 보호와 조절을 통해 공정성의 외연을 확장해 간다는 것이다.”(이준웅 김경모, 2008, 29쪽)   


   물론 저널리즘 현장으로 돌아올 때 판단은 다시 쉽지 않습니다. 저널리즘의 뉴스 가치는 여전히 뉴스 판단에서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고,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외연적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기자들이 저널리즘 뉴스가치와 공정성의 확장 속에서 끊임 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이유입니다.

   공선옥 소설 『꽃피는 시절』의 서해정이 기자들에게 보내는 의심은 무척 아픕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해정처럼 기자들에게 의심의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기자들의 이 같은 입장도 조금 고려해주길 부탁합니다. 아직도 수많은 기자들이 이런 고민을 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실을 위해 뛰고 있으니까요. 아울러 기자들도 혹시 현실에 둔감하거나 미래를 잊어버린 기자의 모습이 아니었는가 고민과 반성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서해정의 기운이 매섭고 또 매섭습니다.



<참고문헌>

공선옥(2011). 『꽃피는 시절』. 서울: 창비.

이준우(2002). 신문 취재보도론. 서정우 편(2002). 『현대신문학』(191-27). 서울: 나남.

이준웅 김경모(2008). ‘바람직한 뉴스’의 구성조건: 공정성, 타당성, 진정성. 『방송연구』, 67호, 9-44.

임영호(2000). 『신문원론』. 서울: 연암사.

*이 게시글은 한국언론재단의 블로그 <다독다독>에 기고한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Posted by 김용출(KIM, YONG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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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스계의 명사들을 잠시 볼 수 있다는 것도 덤이다. 영화에서 폼로이가 ‘데이 브레이크’ 첫 생방송을 앞두고 한 클럽에 앉아 전직 동료들과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장면에서 미국 뉴스계를 대표하는 방송인 몰리 세이퍼와 크리스 매튜스, 밥 쉬퍼 등이 짬짝 출연한다. 해리슨 포드는 이에 대해 “너무나 재미있던 촬영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가 텔레비전 모닝쇼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텔레비전 모닝쇼의 세계도 들여다 볼 수 있다. 모닝쇼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뉴욕의 한 방송국에서 벌어지는 모닝쇼는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다.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정신을 잃거나 개구리와 입맞춤을 하는 등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가 TV를 통해 보는 완성된, 차분한 프로그램 뒤에 가려진 땀과 노력, 웃음과 해프닝, 눈물 등의 실체가 잘 드러나는 것이다.

 

 

   또 <굿모닝 에브리원>에서는 ‘방송의 꽃’ 가운데 하나인 PD의 세계도 엿볼 수 있다. 요즘 한창 뜨는 여배우 레이첼 맥아덤즈가 연기한 극중의 주인공 베키 풀러는 바로 PD다. 그는 거대한 공중파 방송국에 입성, 시청률 꼴지의 모닝쇼 ‘데이 브레이크’ 담당 PD를 맡는다. 목표를 이루기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과 연인과 함께 있을 때조차도 일을 생각하는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 PD와 똑같다. 엄청난 긴장감을 가지고 빨리 판단하고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각본을 쓴 엘라인 브로쉬 멕케나가 시나리오를 썼고, <노팅힐>의 메가폰을 잡은 로저 미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3월1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7분.



▶참고: 아나운서, 캐스터


   아나운서(announcer)는 보통 씌어진 원고를 읽고 인터뷰를 하며 스포츠 등의 상황을 실황중계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가르킨다. 최근에는 활동 영역이 점차 확대돼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진행을 맡고 있다. ‘캐스터’(caster)는 ‘뉴스캐스터’(news caster)의 약자로, 텔레비전 혹은 라디오에서 개성을 표출하면서 뉴스를 읽는 사람을 가르킨다. 뉴스에 관해 약간의 의견이라든지 비평을 한다는 점에서 아나운서와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요약정보


영문제목: Morning Glory

감독: 로저 미첼

주연: 레이첼 맥아담즈, 해리슨 포드

배급사: CJ 엔터테인먼트

제작국가: 미국

상영시간: 107분

장르: 코미디, 멜로·로맨스

개봉일: 2011.3.17


Posted by 김용출(KIM, YONG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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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꾸리 2011.03.29 1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속 저널리즘이란 글이 왠지 오늘따라 마음에 와닿네요~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2. spain travel 2011.10.24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항상 내 가방에서 카메라를 가지고있다. 나는 그것을 잃고 싶지 혹은 가정에서 그것을 왼쪽으로하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에 다 먹고 싶어. 나는 모든 메모리가 기억 가치가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방송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면서 언론과 저널리즘 내에서 방송 기자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심지어 방송 기자들의 뉴스보도와 코멘트 한 마디에 국가와 사회 정책이 변하기도 하고 때론 많은 사람들이 웃고 울기도 한다.

   이 같은 방송 기자들이 방송국 안에서 가장 맡고 싶어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바로 ‘앵커(맨)’일 것이다. 잘 알다시피, ‘앵커맨’(anchor man)은 방송에서 해설과 논평을 곁들여 뉴스를 진행하거나 뉴스쇼 사회를 맡는 사람이다. 뉴스를 잘 전달하도록 할뿐만 아니라 적절한 멘트 등으로 뉴스 보도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송국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물론 수많은 명사를 만나 인터뷰하고 잦은 노출 덕에 스스로 유명인이 되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앵커맨에게도 우리가 잘 모르는 ‘인생 4계’가 있다. 화려하게 등장, 뉴스방송계를 주도할 수도 있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부침을 겪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시간의 흐름을 빗겨갈 순 없다.

   로저 미첼 감독의 <굿모닝 에브리원>(원제 Morning Glory)에는 바로 앵커맨의 사계가 잘 드러난다. 물론 영화의 중심 스토리는 한 여성 PD가 방송국에서 고군분투하며 일하는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를 쌓으며 일과 사랑에서 모두 성공하는 얘기를 따라간다.


<굿모닝 에브리원>의 한 장면.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하 동일.

   학벌이나 스펙이 특별하지 않은 베키 풀러(레이첼 맥아덤즈)는 미국 뉴저지에 있는 지역방송국에서 프로듀서(PD)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만 해고되고 만다. 긴축재정에 여념 없는 윗사람들에게 딱히 보여줄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곳에 지원서를 낸 뒤 어렵게 뉴욕의 한 거대 방송국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맡은 프로그램은 시청률 만년 꼴찌인 모닝쇼 ‘데이 브레이크’. 그는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남자 진행자를 해고하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전설적인 앵커 마이크 폼로이(해리슨 포드)를 영입해 승부수를 던진다.

   하지만 진지하고 심각한 뉴스만 가치 있게 여기는 폼로이는 요리 등 소소한 생활 정보를 다루는 모닝쇼를 업신여기고 아무 것도 하려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시청률은 프로그램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만큼 바닥으로 떨어지고 곳곳에서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한다.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는 기본적으로 여성PD 베키 풀러가 뉴욕의 한 방송국에서 고군분투하며 일하는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를 쌓으며 일과 사랑에서 모두 성공하는 얘기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사람은 명배우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앵커맨 마이크 폼로이다. 뉴스가 진지하던 시절, 그는 방송인들의 우상이자 국제적으로 절대 파워를 가진 기자이자 앵커였다. 전 세계 명사들을 만나고 국제 이슈에 직접 뛰어들어 수많은 특종을 보도해왔던 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자신의 찬란한 인생을 뒤로 형편 없는 모닝쇼 사회를 진행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는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뉴스와 팩트(fact), 진실을 아주 신성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이것은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 때문이다. 앵커도 기본적으로 저널리스트, 리포터인 것이다. 그래서 요리나 살림살이 팁 같은 것을 방송하거나 수다스러운 공동 진행에 대해 대꾸할 생각조자 하지 않는다. 영화 내내 무표정하고 냉소적인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저널리스트로의 진정한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폼로이는 짬짬이 어느 곳인가 전화를 해서 무엇인가를 찾고, 은밀하게 사람들을 접촉하며 자신이 쫓는 진실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쇼의 진행자이면서도 그는 저널리스트인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인디아나 존스> <에어포스 원> <도망자> 등에서  지적인 연기와 액션을 선보인 해리슨 포드의 무표정한 표정이 너무 좋다. 그의 무표정하고 서늘한 표정은 마치 저널리스트, 저널리즘의 이성을 상징하는 듯하다.(2에서 계속)

Posted by 김용출(KIM, YONG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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