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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11 죽음과 삶-이오덕의 『이오덕 유고 시집』

죽음과 삶-이오덕의 『이오덕 유고 시집』


   밝지 않은 형광등 아래에서 두툼한 그의 『우리글 바로쓰기』 『우리 문장 쓰기』 등을 읽으며 한없이 느끼고 깨달았으며 다짐하곤 했습니다.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그의 목소리는 가슴에 쏙쏙 박혀 오이처럼 주렁주렁. 군청색 군복에 육신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포박당했던 1990년대 초반이었죠. 아동문학가이자 교육자, 한글운동가로 평생 우리말과 글 살리기에 앞장서온 이오덕(1925∼2003) 선생에 대한 아스라하고, 개인적인 기억의 파편입니다.


   이오덕 선생의 미발표 시가 수록된 유고시집 『이오덕 유고 시집』(고인돌)이 최근 출간됐습니다. 1925년 경북 청송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오덕 선생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보기 좋아’ 공무원을 그만두고 43년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에 평생을 바쳐 ‘교육의 성자’로 불리기도 했지요.

   이번에 출간된 『이오덕 유고 시집』는 무려 983쪽에 이르는데, 그냥 양만 늘리려고 두툼한 게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시가 빽빽하게 풍경을 이루는 모습니다. 마지막 984쪽에는 시골의 작은 집과 내리쬐는 태양을 배경으로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평화로운 그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유고시집은 1950년대부터 200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발표하지 않은 시 341편이 시대순으로 6부로 나눠 실렸습니다. ‘참꽃이 필 때면’ ‘학교 가는 길’ 등 생전에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에게 준 시 7편도 처음 공개됐고요. 각 부마다 이오덕 선생의 삶을 정리해준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회장은 “고인은 몸이 많이 쇠약해진 뒤에도 마을과 산을 오르내리면서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귀담아 들으며 글을 썼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출판사측은 “아들 이정우씨가 고인의 유품과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갈무리됐다”고 전했고요.


            (사진=고인돌 제공)
 

   시집으로 들어가봅니다. 먼저 가난했던 1950년대 그의 시에는 가난하던 아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눈물의 폭포를 이룹니다. 교사였던 그가 가난 때문에 학비를 내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지금도 가슴 뭉클.


출석부에 또 하나

붉은 줄을 긋는다

수업료를 안 가져 온다고 꾸중당한 아이

교무실에 불려와 울던 아이.

한 달 전부터 소식이 없더니

오늘 아침에 편지가 왔다.

“서울에는 피를 빼어가며

고학하는 학생이 많다는데,

피를 사줄 사람도 없으니……’ 하고,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출석부에 또 하나 붉은 줄을 긋는다

…(중략)…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는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손을 호호 불어가며 지게를 지고 산을 넘고 있을까?

오늘 아침엔 따스한 죽이라도 배불리 먹었을까?

…(중략)…

이제 시업(첫 수업시간)종이 치는데, 종소리가 울려오는데

출석부를 들고 교실에 들어가면

나는 또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출석부> 중에서)


   또 교단을 떠난 1990년대의 시들엔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에 힘을 쏟던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글 바로쓰기』 『우리 문장 쓰기』 등을 펴내 한글세대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그 아닙니까. 


이른 봄 돋아나는 냉이 민들레

논밭 둑 물들이는 할미꽃 제비꽃

온 산에 붉게 타는 진달래꽃

그 모든 꽃 이름 아름다워라

우리말이 있기에 우리가 있지요.(<우리말이 있기에> 부문)


   아울러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아리랑 나라 사람보다 더 아리랑 나라를 생각한다는 러시아 출신 박노자 오슬로국립대학 교수에 대한 지적도 눈길을 끕니다. 박노자씨가 2001년 8월29일자 한 신문에 쓴 <죽음보다도 무서운 기억>을 읽고, 8월31일 아래와 같이 지적합니다. 박노자씨의 논지와 주장에 대해선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글에 붙은 ‘혹’에 대해서는 추상 같이 지적하는 내용이죠. 박노자씨만이 아닌, 글을 쓰는 우리 모두를 향해 있는 듯해 저 또한 부끄럽습니다.  


우선 “나는”이라고 하는 말부터 할 줄 모르고 “필자는” 해놓은 것부터 그렇고,

“보면서”할 것을 “목격하면서”라고 쓴 것부터 그렇지요.

이것은 참으로 흉측한 부스럼이요, 혹입니다.

당신은 이 땅에 있는 동안 참 많은 가르침을

학생들에게 주었지만

그렇게 하는 동안에 그만 스스로

그 무서운 혹을 몸에 붙이고 말았으니

너무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한국을 떠났으니 부그 그곳 오늘로 파란 하늘에서

그 부스럼 혹을 깨끗이 씻어 없앨 수 있기를 바랍니다.(<박노자의 말7> 중)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이오덕 유고 시집』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죽음과 되삶(재생), 행복 등에 대한 시들입니다. 아마 그것은 진리를 깨친, 그래서 서늘한 시이기 때문이겠지요. 시를 넘어서는 감동이 있습니다.  

   1950년대 말 이오덕 선생은 신부전증을 앓아 경북 상주의 누나의 집에서 치료하며 죽음을 대면합니다. 1960년 10월8일 쓴 시 <죽음(병상일기에서)-우주는 조화된 하나의 기관이다>에는 죽음과 대면하던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죽음마저 삶의 한 조각으로 껴안은 모습이 서늘하고 서늘합니다.


내 비록 이 세상에서

하고픈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언제나 한번은 돌아갈 고향

죽음을 생각하면 항상 즐겁다.

거기서 나는 풀과 나무의 새들

산악과 바다와 별들, 그리고

먼 옛날의 성현들과 함께 호흡하리니

우주로 통하는 모든 길이 그것에 있어라.

거기서 나는 다시

한 마리 새나 짐승으로 태어나도 좋고

한 방울 이슬

혹은 또 다시 어느 가난한 나라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도 즐겁다.

내 비록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죽는다 하더라도

언제나 한 번은 돌아갈 고향

신은 내 이루지 못한 소원을 위하여

포근한 안신과 다시 즐거운 생의 호흡을

언제나 약속하고 있음이여!(<죽음> 전문)


   죽음을 대면했던 이오덕 선생은 3년여 치료 끝에 가까스로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고 재생의 기쁨을 맞봅니다. 1961년 5월21일 쓴 시 <재생>에는 새 삶을 받으면서 이제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리라고 다짐하는 모습이 담겨 있죠. 그래서 우리에게 묻는 듯합니다. ‘내 것만’이 아닌 삶을 살고 있는가, 아직 그대는.   


그러나, 나는 이미 죽었던 몸

슬픔과 기쁨이 둘이 될 수 없고

삶과 죽음은 하나인 것

이제는 덤으로 찾아온 목숨의 보람을 위하여

이제는 진정 즐거이 찾아올 죽음을 위하여

눈앞만 바라보던 그런 일은 말아야지

내 것만 생각하던 그런 일은 말아야지

이름 없는 한 포기 풀이라도 너무나 즐겁다

길가에 버려진 한 조각 돌멩이의 빛나는 생명이여!

내가 있을 자리를 찾아

내게 알맞은 일을 하고

내가 맺을 열매를 맺는 날

나는 즐겁게 떠나가리라.

아아, 하늘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여!

나는 살았는가?

보람 있는 일을 하리라

보람 있게 살아가리라(<재생> 부문)


   이오덕 선생은 2003년 8월25일 온몸에 퍼진 암에도 의연하게 삶을 살다가 작은 수첩에 마지막 일기를 쓰고 태연하게 돌아갑니다. 죽는 날까지 펜을 들고 글과 함께 했다는 이주영 회장의 전언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오덕 선생은 갔지만, 행복이야말로 지난한 과정의 끝자락에서 목표 달성을 통해 맞보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꿈이 있는 것 자체가, 과정과 여정 자체가, 결국 ‘지금 여기’라는 가르침은 남아 우리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2002년 2월12일의 시 <행복>이 좋고 또 고마운 이유입니다.


설날 아침

감자 세 개 구워먹고

앉았으니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온 방에 가득 찼다.(<행복> 전문)


 

참고문헌


이오덕(2011). 『이오덕 유고시집』. 파주: 고인돌.

Posted by 김용출(KIM, YONG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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